설레발이의 끄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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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비전과 소명

FC설레발 2008. 3. 4. 02:38

시험을 친 직후라, 이래저래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듣게 되는 말, 혹은 항상 떠오르는 화두는, 과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알고 그것을 좇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라는 의문이다.

인간은 세계관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다. 세계관을 굳이 정의내리자면 개인이 선호하는 가치를 수립하고, 그것을 조정하며 또한 재생산하는 신념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기독교인의 세계관은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고, 그것을 체화하여 성화되는 삶이라는 가치를 선호하고, 그것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이 없는(어떤 종교든 간에) 일반인들의 세계관은 곧 물질적 가치를 선호하고, 이익을 추구하며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삶을 추종하게 만든다. 특히 작금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거센 물결이 밀려오는 시대에서 이러한 물질적 가치를 선호하는 세계관은 절대 진리처럼 숭상되고 있으며, 이러한 세계관으로부터 '성공', '자기계발' 등과 같은 가치가 절대적으로 선호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라면, 선호하는 일과 목표, 그리고 사명감 역시 세계관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다고 할 것이다. 지금 일반적인 사람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바로 먹고 살만하게 재물을 쌓고, 그것을 투자하여 불리고, 가족을 먹여살리고 노년을 여유롭게 보내는 삶일 것이다. 매우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목표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를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것이 세상이 속삭이는 삶의 목표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세상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부터 빠져나올것을 항상 종용하고 계신다. 기독교인의 삶의 지향성은 하나님과 천국이어야지 결코 이 세상이 될 수 없다. 세계관을 하나님께 지향하고, 발딛고 서 있는 현세에서 그러한 하나님의 세계관을 퍼트리고 세상의 세계관과 맞서야 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숙명이다. 따라서 마음 속에서는 항상 세계관의 충돌이 일어난다. 현실 앞에서 무력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 때문이다. 죄성 때문이다. 하나님을 온전히 갈망하고 항상 밀착할 수 없는 인간의 죄성 말이다.

내게 있어서 고시가 그러한 세상 가치관을 내게 자꾸 심어주고 재생산하는 존재가 되었을 때, 내 마음은 갈등으로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을때 하나님은 감사하게도 내게 말씀을 해 주셨다. 내려놓으라고. 고시가 추구하는 가치관을 내려놓고, 또한 고시에 합격해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되겠다는 내 다짐과 내 계획조차도 모두 내려놓고 천국의 가치관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셨다.

참 다행인 것은 지난 기간동안 하나님은 내게 많은 것을 보여주셨고, 또한 많은 학문적 insight를 여러 기회(학교 수업, 고시공부, 교회)를 통해 주셨으며, 생각만 해도 하나님의 눈물이 느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목표를 허락해 주셨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하다. 하고싶은 일을 찾았으므로. 물론 그 하고 싶은 목표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한 주변 환경이나 여건을 허락해 주신것도 감사하다. 망말로 내가 부모님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입장이었으면 그것을 할 수 있었을까?

기독교인은 그래서 행복하다. 내가 하고싶은 것을 잘 알 수 없을때, 나보다 나를 더 잘아시는 하나님이 그것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선 내 계획과 생각을 모두 비우고 내려놓으며, 그 빈자리에 하나님을 초청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