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치기 여행을 갔다 온 후 사진을 보면서, 문득 필름 한통을 다 써가며 찍은 사진들의 갯수가 너무나도 적다는 것을 느꼈다. 왜 그랬을까.. 예전에는 필름 한통을 다 찍는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고 또 필름 한통을 다 찾으면 '우와.. 사진 많이 찍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는데.. 그 주범은 다름아닌 디카다.
같은날 찍은 사진들이지만, 필름으로 찍은 사진은 36장, 그리고 디카로 찍어 '갈긴' 사진은 180장.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정말 찍고 싶은 사진을 찍는다. 반면,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마치 기록하듯이 사진을 찍어 '갈긴다'. 이 표현만큼 더 정확한 표현이 없는 것 같다.
필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과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고, 작가(거창히 말하자면)의 혼과 노력을 담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셔터를 한번 눌러버리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지털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과정은 단지 메모하는 것 그 이상도 아니다. 맘에 들지 않으면 지워버리고 다시 찍으면 그만이다.
사진을 비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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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 날카롭다기보단, 빛이 부드럽고 역광의 효과가 매우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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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로 찍은 사진. 색깔이 아름답다. 하지만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 물론 디카가 고성능이 아닌 컴팩트디카여서 그럴수도 있으나, 내 경험상, 고성능 DSLR로 찍은 사진을 봐도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가지긴 어려웠다.
비록 필름으로 찍은 사진이 거친 감이 있고, 말끔하진 못하나, 그 속에는 내 노력과 여러가지 생각(구도, 노출, 초점심도에 관한 걱정들.. 초점이 잘 맞았을까 하는 걱정..)들이 담겨 있어서 한장 한장이 정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디카로 찍은 사진은 깔끔하고 보기 좋긴 하지만.. 뭐랄까.. 뭔가 부족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진을 찍는 것은 예술이 되어야 한다. 창작의 고통과 환희를 쉽게 철컥철컥 찍어버리는 디카가 빼앗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너무나도 쉽게 셔터를 눌러버리고 마는 그러한 세태가 너무나도 죄스러워서, 그나마 수동모드가 갖추어진 컴팩트 디카를 구입했건만, 사진을 비교해 보면 그래도 필름으로 찍은 사진이 훨씬 애착이 간다. 그리고 그 사진에는 '사람의 손길'과 '자연스러움' 이 느껴진다. 비싼 돈 들여서 DSLR 안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돈도 없고...;;;) 쉽게 찍을 사진은 컴팩트 디카로, 어렵고도 한장 한장 정성을 들여 찍을 사진은 필카로 찍으면 된다.
디지털아.. 너는 편리함을 줄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인간스러움'을 안겨 줄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