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발이의 끄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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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진일보의 초석이 되길

FC설레발 2008. 2. 24. 02:04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았지만 어찌되었건 긍정적인 측면을 많이 생산한 만남이었음에는 분명하다. 특히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양 정상의 회담에 임하는 태도이다.

2000년의 만남은 만남 그 자체로써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쇼맨십도 많았고, 실질적 결과물 보다는 큰 방향성만잡고 끝났었다. 하지만 이번의 만남은 '우리 민족끼리' 의 설레임 보다는 국가대 국가, 그리고 앞으로 공존하면서 살아나가야 할 두 국가로서의 남북한이 만나서 진지하고도 신중하게 서로를 대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말 지어내기 좋아하는 언론들은 김정일의 태도를 두고 김대중 대통령을 대할때 보다 격이 낮다느니.. 김정일이 건강이 안 좋다느니.. 양 정상간 의견의 불일치가 있지 않냐는 둥.. 어떻게라도 꼬투리를 잡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모든 말들은 본질을 흐리는 것에 다름아니다. 내가 볼 땐 오히려 두 국가의 정상이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실리를 챙기기 위한 신중한 외교의 태도로써 서로를 대한 결과였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제 만난 것 그 자체를 가지고 껴안고 손잡고.. 오버액션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앞으로도 계속될 정상회담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싶다. 정상회담은 남북이 서로를 인정하고, 뜨거운 민족애의 감상에 젖어있기 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를 냉철한 머리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또한 노대통령의 귀국(?) 대 국민 연설을 보면서 든 생각은, 남북이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어나가는 지난 10여년의 과정 가운데에서 드러나고 있었던 미흡한 부분들을 수정해야하겠다는 인식의 변화가 엿보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남이 통일을 지향하는 과도기에서 북과 어떻게 관계를 심화시켜야 할 지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는 점을 대통령이 인지했다고나 할까.. 이 생각은 노통의 개성공단 연설 중에서 우리가 개혁과 개방을 요구하는 것이 북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 부분에서 문득 들었다.

개혁과 개방. 누가 누구를 개혁시키고 개방시킨다는 것인가? 화해와 협력의 패러다임 대 전환이 일어난 지난 10년간,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체제가 우수하니, 너희도 이것을 받아들여서 우리처럼 되어라' 라는 남측의 오만한 태도이다. 우리는 북한을 "개혁" 시키고, "개방" 시킬 자격이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만한 역량이 되는가? 우리가 그리고 있는 북한의 개혁과 개방은 어떤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구체적인 자문 없이 우리는 그동안 개혁과 개방을 너무나 단순한 경제논리, 또는 민주평화론적인 얕은 인식론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지 않았는가?

우리의 생각이 아무리 상대를 배려한 것, 그리고 좋은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것일 수 있다. 역지사지의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공존하기 위한 필수적인 가치는 바로 역지사지라는 기본적 사실을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망각하고 있지 않았는지 되돌아 볼 때다. 또한 김정일 체제가 존속하는 한 우리가 꿈꾸고 있는 "개혁과 개방" 을 통한 북한 외투 벗기기 시도는 근본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김정일의 정치적 역량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의도를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따라서 우리가 제시하는 청사진을 호락호락 받아들일 리도 없으며, 그것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지난 10년간 배워왔지 않은가.. 그것을 생각하고 접근해야 할 때다. 차근차근 밟아나가야 한다.